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해 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인공지능(AI) 혁명을 주도한 8명의 기업인, 이른바 ‘AI 설계자들(Architects of AI)’을 선정했다. 이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023년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등 단일 인물이나 정치·문화계 인사가 선정되던 관례를 깨고, 기술 권력이 인류의 삶 전반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타임지 표지는 1932년 뉴욕 록켈러센터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고공 노동 중 식사를 즐기던 사진인 ‘마천루 위의 점심’을 오마주했다. 하지만 사진 속 노동자들의 자리는 현재 전 세계 시가총액과 기술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8인의 CEO가 대신했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리사 수(AMD), 일론 머스크(테슬라·xAI), 젠슨 황(엔비디아), 샘 올트먼(오픈AI),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다리오 아모데이(엔스로픽), 페이페이 리(월드랩스)가 그 주인공이다.
◆ “질문이 무엇이든 답은 AI였다”... 불가역적 시대의 도래
타임지가 이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배경에는 AI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닌, 현재의 ‘필수 불가결한 기반 시설’이 되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타임은 “2025년은 인공지능의 완전한 잠재력이 강력하게 드러나면서, 기술 도입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거나 그 영향권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해진 해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와 콘텐츠 생태계에 있어 AI 설계자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텍스트를 넘어 영상, 음성, 실시간 인터랙션까지 가능해진 AI 모델들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 타임은 “그 어떤 질문을 던지더라도 AI가 답을 내놓는 시대가 되었다”며, 이러한 시스템을 상상하고 디자인하고 실제 제품으로 구현해 낸 이들 8인이 국제 관계와 경제 질서를 재편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들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물론, 미·중 간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도 국가 전략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며 단순한 기업인을 넘어 ‘국가급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빛 뒤에 가려진 그림자... 집중된 권력과 부작용에 대한 경고
타임은 AI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 도사린 어두운 단면도 놓치지 않았다. 8인의 설계자들이 인류에게 새로운 도구를 제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역시 2025년 한 해 동안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에너지 소모와 환경 문제다. AI 학습과 운영을 위해 천문학적인 전력이 투입되면서 에너지 위기가 가중됐다. 또한,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불안, 정교해진 가짜뉴스(Deepfake)를 통한 여론 조작, 그리고 더욱 고도화된 사이버 공격 등은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무엇보다 소수의 기업 권력에 데이터와 자본이 집중되는 ‘디지털 독점’ 현상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협 요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 정치와 문화를 넘어 기술로... 타임지가 본 인류의 이정표
1927년 ‘올해의 인물’을 처음 선정한 이후, 타임지는 시대의 정신을 관통하는 이들을 기록해 왔다. 2023년에는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테일러 스위프트를, 2024년에는 정치적 격변의 상징인 트럼프를 선택했던 타임지가 2025년에 ‘AI 설계자들’을 집단 선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인류의 운명은 정치적 구호나 문화적 유행이 아닌, 8인의 설계자가 짜놓은 알고리즘과 반도체 칩 위에서 결정되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2025년 타임지의 선택은 인류가 AI라는 거대한 마천루 위에 올라섰음을, 그리고 그 건물을 지은 설계자들의 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공표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